겸손히 자기를 비우면 아름다워지나 봅니다. 단풍나무마다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며 드는 생각입니다. 집에서 교회로 오는 길가에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나무를 보며, 차를 세워 바라봐 주고픈 충동이 들곤 합니다.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지난 주 어떤 분이 반백세 클럽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고 생일축하 멘트를 주시더군요. 맞습니다. 이제 오십줄에 들어섰네요. 공자께서는 쉰살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 자신의 부르심과 사명을 깨닫는 나이라 했는데(知天命), 과연 그런지 겸손해지게 됩니다. 아이들이 이제 좀 컸다고 아빠 생일에 손편지도 써주더라구요. 어설픈 한글 실력을 짜내고 짜내어 아빠를 향한 사랑을 표현한 것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 녀석 모두 아빠가 웃겨 줘서 고맙다는 표현을 하더군요. 아들들을 웃길 줄 아는 아빠이니 저는 성공한 아빠인 것 같습니다. 한 녀석은 “아빠는 더 많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 돈을 모았어요. iPhone 18 Pro Max 구매하세요.” 이렇게 써서 50불을 봉투에 담아 주더군요. 셋이서 얼마씩 모으자 담합이 있었던 듯 합니다. 이게 우리 어르신들이 그렇게 받고 싶어한다는 자식들의 생일 현금 봉투인가 봅니다. 저는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생일 선물로 자녀들의 돈봉투도 받아 보았으니 말입니다.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아빠에게 사라고 강요한 멘트이긴 하지만, 아빠는 더 많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그 마음이 참 감사했습니다.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동안 짜장면이 싫다고 했던 이유를 이제 알아가나 봅니다. 가수 GOD가 불렀던 “어머니”라는 노래에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는데, 그게 다 자식들 주려고 일부러 싫은 척 했다는 것을 자녀들이 모르지 않았음을 노래한 것이었죠.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제가 팔불출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못 살진 않았나 봅니다. 생일날 반가운 전화 한통이 있었습니다. 제가 15년 전에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섬겼던 “국제교회”라는 이름의 한국에서 일하는 제 3세계 이주 노동자 사역에서 함께 했던 형제의 전화였습니다. 손강호라는 친구인데 제 생일인줄 알고 전화를 주었더라구요. 조선족 친구인데 제가 한국을 떠나고도 힘든 일 있을 때마다 저에게 전화하고 문자하고 귀찮게(?) 했던 녀석입니다. 이 녀석도 제 아들들이 했던 말처럼 저에게 “목사님이 많이 웃겨줘서 그때 교회 생활이 행복했어요.”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제 천명이 사람들을 웃기는 것인가 봅니다. 천명을 깨달았으니 더 많은 이들에게 말씀을 통해 기쁨과 웃음을 주는 일에 정진해야 하나 봅니다. 이주 노동자로 참 힘들었던 친구인데 교회에서 함께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며 그렇게 삶의 짐을 덜어 갔었던 거죠. 우리도 함께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면서 이민자의 고단함을 서로 달래가면 좋겠습니다. 나그네의 벗으로서 저의 소명을 다시 되세기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보름달들 보셨나요? 추석 기분은 나지 않지만 보름달을 보니 ‘아~ 추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추석의 보름달은 유난히 큰 것 같네요. 가득 채워진 보름달을 보면서 가을 추수를 앞 둔 조상들의 마음도 넉넉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하는 덕담을 서로 주고 받았던 것이겠죠.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가을 추수를 앞 둔 황금빛 벼논과 온갖 작물들로 무르익어가는 들녘을 보며 풍년을 허락하신 하늘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보름달을 보며 그 풍성한 마음,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가을은 감사의 계절이어서 좋습니다. 새푸른 시작인 봄과는 다른 풍성함이 가을의 매력입니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멀리서 보기에 하도 아름답기에 가까이 다가가 보는데 멀리서 볼 때만 못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멀리서 지켜보는 것인가 봅니다. 세일럼 로드에서 어텀릿지 교회로 들어오는 길 옆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을 따라 작은 오솔길이 나 있습니다. 최근에 저는 그 길을 따라 자주 걷곤합니다. 9월 말에 만개하는 미국 중서부 프레리 지역에서 야생하는 멕시밀리언 해바라기가 오솔길 양 옆으로 가득합니다. 한 줄기에 꽃 하나를 피우는 해바라기와 달리 이 야생 해바라기는 한 줄기에 아담한 여러 꽃봉우리가 달려 있습니다. 산들바람이 불어오니 이 녀석들이 저에게 손을 흔드는 것 같습니다. 녀석들의 노란 미소가 기분을 한껏 북돋아 줍니다. 호랑나비와 호박벌들은 가을이 깊어가는 것이 아쉬운 지 열심히 꽃사이를 날아다니며 꿀을 빨아댑니다. 피조물들은 이렇게 가을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색깔과 모양으로 감사 찬양하고 있더군요. 감사의 계절 가을에 천천히 걸으며,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내가 올해 받은 복을 카운트해 봅니다. 한 바퀴 다 돌아오는 길이 짧을 정도로 감사한 일이 참 많더군요. “여행자는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라는 이 경구가 언제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듭니다. 인생의 참 의미와 진리를 찾아 나선 순례의 길 위에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이 거저 받은 선물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부자는 따로 있지 않고 자족하기를 아는 사람이 부자라 하지요. 바울 사도도 어떤 형편에서든 자족하기를 배웠고,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깨달았다 고백합니다(빌 4:11-12). 노자도 “족하기를 아는 것이 부함이다(지족자부-知足者富).”라고 했습니다(도덕경, 33장 중). 현대인들 대부분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 가난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 때문이겠죠. 흔히 말하듯 ‘필요(need)’ 보다 ‘욕심(greed)’에서 생기는 가난입니다. 이 가을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감각인 감사와 자족이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만족하여 배부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자족의 귀한 마음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여러분 모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길 빕니다.
가끔 교회 건물을 나와 교회 옆의 밭 곁에 서서 가만히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곤 합니다. 요즘엔 온갖 풀벌레 소리가 대지를 덮습니다. 이렇게 많은 생명체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건물 속에 갇혀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가만히 더 귀 기울여 보면 작은 산 새 소리, 커다란 홍커들의 소리도 섞여 마치 대자연의 오케스트라 앞에 서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합니다. 이렇게 대자연은 자기들의 역할을 해가며 창조주의 창조원리를 따라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연환경은 하나님의 은총이 깃든 생명의 터전이자 하나님의 몸과 같습니다. 자연환경을 움직이는 힘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이죠. 창조질서는 근본적인 질서이며 최고의 질서입니다. 창조질서를 거슬러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창조질서를 인간만이 거스르려 합니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재앙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질서를 거스른 인간에 대한 역습입니다. 화학연료에 기댄 산업화는 인간에게 편리함과 풍요를 안겨 주었지만, 자연환경을 생각하지 않은 무리한 자원의 남용은 결국 인간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구 생태계가 멸망해 가는 상황에서 교회가 취할 수 있는 선교적 과제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명령하셨던 동산을 잘 돌보라는 최초의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지구라는 별을 잘 돌보고 관리하며 보전하는 사명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선적으로 있습니다. 지구를 살릴 작은 실천들이 절실합니다. 아무리 작은 실천도 지속적으로 하면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땅한 일을 시작하는 용기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갈 6:9)이이라고 바울은 우리를 격려합니다. 창조 세계는 우리가 돌봐야 할 우리의 이웃입니다. 인간은 온갖 강도 짓을 이 창조 세계 위에 행해 왔고, 우리의 이웃인 지구가 끙끙 앓고 있습니다. 탄소배출을 최소화 하는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을 회복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인 동시에 기도입니다. 태산도 작은 티끌들이 모여서 만들어 진 것이고, 피카소의 그림도 선 하나에서 시작된 것처럼 낙심하지 않고 꾸준히 그런 삶을 실천할 때 우리는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것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한 말입니다. “자연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자연의 시스템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순환한다. 싹은 마치 짧은 봄날이 영원하기라도 한 듯 서두르거나 갈팡질팡하지 않고 서서히 자라난다. 자연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각각에 필요한 시간만큼 지극한 공을 들인다.” 우리는 빠른 속도에 너무 길들여져 왔습니다. 이제 속도를 조금 늦출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의 속도와 보폭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연과 자주 접하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절기상 백로를 막 지났습니다. 기온이 내려가면서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절기로서 여름에서 가을로 본격적으로 접어드는 절기이죠. 백로가 지나면 농부들은 무논에 물을 빼주어 곡식이 여물기를 기다립니다. 이제 얼마 후면 수확의 계절이 오는 것이죠. 수확의 계절은 감사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추원보본追遠報本 보본반시報本反始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상의 덕을 기억하면서 자기의 뿌리에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가을은 조상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몰락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는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렇게 ‘잊지 말라’, ‘기억하라, 기념하라’라는 말이 많이 나오나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주하게 사는 동안 늘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잊어 버리고 욕망의 벌판을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절기이고 종교의식입니다. 순환하며 반복되는 의식과 의례를 통해 정체성을 되새기는 것이지요. 올해는 911 테러가 일어난 지 2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뉴욕에 갔을 때 가족들과 함께 911에 무너져 내린 쌍둥이 빌딩 자리에 남겨진 추모 공원을 방문한 적 있습니다. 무너진 빌딩에 다시 건물을 세우지 않고 까맣게 움푹 파인 내모난 연못에 중심에 네모난 홀을 향해 물들이 흘러 들어갑니다. 물은 아무리 흘러들더라도 가운데 검은 사각형의 빈 구멍을 채우지 못합니다. 주변 난간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주변으로 수백 그루의 나무가 빙 둘러 심겨져 있습니다. 돌아 올 수 없는 희생자들의 빈 자리는 그 무엇으로 채울 수 없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추모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 심겨진 Survivor Tree는 회복과 재생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엄청난 상실을 기억하면서도 우리는 다시 살아나고 회복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이 추모 공원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벌어지지 않길 바랐는데 전쟁의 소문은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25주년이 지나면서 911의 충격은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일까요? 신명기 26장 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억투쟁이 비쳐집니다. ““내 조상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아람 사람으로서 몇 안 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몸붙여 살면서, 거기에서 번성하여,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번째 추수 열매를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며 한 목소리로 드리는 고백이었습니다. 조상들의 경험이지만 자기 기억으로 소환해 오고 있습니다. 자자손손 이 구절은 의례화 되어 반복되어 고백되었습니다. 반복은 지루할 지 모르지만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을 마음에 새기는 과정이기에 소중합니다. 김현승 시인은 감사하는 마음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감사하는 마음―그것은 곧 아는 마음이다!/내가 누구인가를 그리고/주인이 누구인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 감사는 우리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깊이 알 때 우리 속에 저절로 스며드는 마음입니다. 이 가을에는 기억을 통한 감사의 리터지들이 우리 삶 속에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 저녁 제법 날씨가 선선해졌죠? 8월 7일이 입추였고, 8월 23일은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입니다. 해도 많이 짧아졌습니다. 시작할 때는 언제 끝나나 했던 아이들의 방학도 이제 끝이 보입니다. 아이들 키우는 부모님들은 여름 내내 아이들 돌보시고 밥해 먹이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죠? 애쓰셨고 격려와 칭찬을 여러분께 아끼지 않습니다. 저희 집에는 지난 주부터 손님이 한 분 와 계십니다. 작년에 버지니아로 이사갔던 태균이 아시나요? 이시원 자매님의 둘째 아드님이죠. 태균이가 제 맏아들인 선율이를 보겠다고 2주 동안 우리집에서 머물기로 하고 온 것입니다. 얘네 우정이 참 부럽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런 친구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도시로 유학을 가면서 모든 것이 낯설었고 적응을 잘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내가 보고 싶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날아 올 친구 한 명 있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지 않을까요? 우정의 관계만큼 신나고 부요한 관계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의 사명을 소박하게 말한다면 우정의 관계를 확장해 가는 것이 아닐까요?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 말씀하셨던 공자님의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친구는 언제나 소중하고 언제나 정겹습니다. 손님이 찾아 왔지만 그도 저희 집에서 지켜야 할 규칙 한 가지가 있습니다. 식탁에서 밥 먹을 때는 모든 전자기기를 멈추는 것입니다. 한병철이라는 철학자는 그의 책 <피로사회>에서 멀티테스킹(Multi-Tasking)을 동물들의 특징으로 규정합니다. 동물들은 밥을 먹는 와중에도 귀를 열고 자신의 천적이 공격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 가지 일에 몰입할 수 없는 것이죠. 먹이를 씹으면서도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을 기웃거려야 하는 멀티테스킹이 동물들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의 성과 사회는 인간에게 이러한 멀티테스킹을 요구하는데, 인간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것이라 진단합니다. 멀티테스킹은 집중력의 확장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집중력을 여러 갈래로 찢어놓는 생존용 과잉경계 (Hypervigilance)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멀티테스킹에 익숙해진 성과 사회의 인간이 잃어 버린 것은 멈춰 섬, 사색, 깊은 심심함이라고 그는 진단합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깊은 사색입니다. 한 가지 대상에 오롯이 깊이 몰두하는 것이지요. 인간의 문명의 창조와 발전은 깊은 심심함에서 출발한 사색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하지만 현대 사회는 깊은 심심함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밥을 먹는 와중에도 Swaping(쓸어넘기기), Tapping(두드리기)이라는 디지털 의례 (digital liturgy)를 행합니다. 이런 디지털 의례는 하나의 종교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적어도 우리집 식탁에서 만큼은 인간이기를 원하는 마음에 식탁을 Tech-Free Zone으로 정한 것입니다. 테크프리 존, 테크프리 타임을 지정하여 깊은 심심함에 머물러 보는 것은 인간이기를 위한 작은 몸부림은 아닐까요? 디지털 예전을 멈추고 깊은 심심함 가운데 오롯이 음식을 음미하고, 식탁의 상대를 즐거워하며 이야기 하는 것을 통해 인간됨을 작게나마 실천해 봅니다.
저에겐 8월에 기념일이 참 많습니다. 2015년 8월 2일은 중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시안이라는 도시에 도착한 날입니다. 공교롭게 같은 날, 2022년 8월 2일 화요일에 우리 가족은 켈레포니아로부터 로드트립을 통해 로체스터에 도착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가정이 이곳에 이사한 지 만 4년이 이제 채워졌습니다. 물 설고 낯 선 이 곳에 저희가 잘 정착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성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4년, 여러분 덕에 행복했고 여러분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8월 9일은 제 부친께서 돌아가신 1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한국의 가족들과의 추도예배도 줌을 통해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디아스포라 이민자들의 마음을 이렇게 나마 공유하게 되어 감사하지만, 한 편으로 함께 하지 못해 홀로 남겨지신 어머님께 죄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주일 예배 후에 저희 가족만이라도 모아서 추도예배를 드리며 아버지를 추억해 보아야겠습니다. 8월 30일은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결혼 한지 18년이 됐네요. 2년만 지나면 20주년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귀한 동반자를 허락하시고 아름다운 가정 이루게 하신 주님께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어떤가요? 저에게 8월에 기념일이 정말 많긴하죠?
한 가지 좋은 일이 지난 주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념일들을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기념하며 선물로 주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목회와 목양을 위해 로체스터로 보내 주신 하나님 앞에서 4년을 무사히 목회할 수 있게 하신 것에 너무나 감사하던 시간에 받은 선물이라 더 값집니다. 지난 주 주보에 22년 된 자동차가 생기게 됐다고 나눴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큰 계획이 있으셨더라구요. 하나님의 반전은 놀랍습니다. 저희가 선하다 가족인데, 하나님이 선하다에게 소나타(소나다, 발음이 좀 비슷하지 않나요?ㅎㅎ)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도 새차를 주셨어요. 야고보서 1장 17절 말씀에 온갖 좋은 선물과 완전한 은사가 하늘의 빛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온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이 말씀대로 하늘에서 선물이 뚝 떨어진 겁니다. 미션 서포트를 하시는 분께서 저희 가정을 위해 주신 선물인데,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하여 선물해 주신 그 마음이 너무 귀합니다. 설교한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말씀이 살아 있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는 것이 증거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합니다. 제국의 이야기, 욕망의 이야기를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섬기고, 서로 사랑하고, 자비를 베푸는 이야기들은 언제 들어도 아름답습니다. 천국에서의 삶을 이곳에 미리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니까요.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채워져 가야 합니다. 향기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교회,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한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다하나교회가 만들어갈 이야기들, 기대되지 않으세요?
우리 교회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알고, 믿고, 그리고 그분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풍성한 삶」 제자훈련 시리즈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이 과정은 “하나님나라복음 DNA 네트워크(약칭, 하나복)”에서 개발한 제자훈련으로, 성도들이 단계적으로 신앙을 이해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세 단계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단계는**「풍성한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이 과정은 예수님을 아직 잘 알지 못하거나, 복음에 대해 처음 듣는 분들을 위한 과정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의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함께 나눕니다. 매주 한 번 만남을 가정했을 때, 약 8-10주 동안 진행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신앙의 첫 결단을 하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복음을 처음듣는 분들을 위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기존 신자들에게도 필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미 복음을 들은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을 다시 들어야 한다고 권면했죠(롬1:15). 우리도 복음을 다시 듣고 재차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풍성한 삶의 첫걸음」**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분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말씀을 읽는 삶, 기도하는 삶, 공동체와 함께 신앙을 살아가는 삶 등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습관들을 배우게 됩니다. 약 10-12주 동안 진행되며, 신앙의 기초를 세우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풍성한 삶의 기초」**입니다.
이 과정은 이미 신앙생활을 시작한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을 배우는 제자훈련 과정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에 대한 이해, 공동체 안에서의 삶, 그리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배우게 됩니다. 보통 12-14주 동안 진행되며,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제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풍성한 삶」 시리즈는 복음을 듣고, 신앙의 기초를 배우고, 제자로 성장하는 세 단계의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존에 제자훈련의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더라도 한 교회가 같은 DNA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훈련을 권해드립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과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풍성하게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각 단계에 해당하는 영상과 책자가 있어서 미리 읽어보고 질문을 가지고 만나서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제자훈련 방식입니다. 이번 주는 훈련의 개요를 이렇게 요약해 드렸습니다. 다음주는 교회 광고시간을 통해 훈련소개영상을 함께 시청해 보도록 합니다. To be continued.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목장이 뭐예요?”, “목장모임은 왜 하는 거예요?” 우리는 왜 목장 모임을 하는 것일까요?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이야 말로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목장 모임의 목적이 무엇이고 왜 모이는 지 알고 모이는 것이 정말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제임스 스미스라는 신학자는 교회를 “심장이식재활센터”라는 은유로 설명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던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심장으로 이식되어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심장을 이식 받은 환자는 수술로 치료가 끝나지 않습니다. 재활 치료가 이어집니다.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서 상태를 점검 받고 주기적인 운동과 식단 조절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니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부터가 중요합니다. 더욱 건강하고 바른 삶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건강한 삶이란 건강한 인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름아닌 예수의 인격과 성품을 덧입기 위해 노력하는 삶입니다. 구원 이후의 삶은 바로 그리스도의 성품, 다른 말로 덕이 내 성품과 인격 안에 자라가도록 노력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덕을 함양하는 삶 또는 성화의 과정은 많은 노력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과 실천은 혼자서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셨죠. 교회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재활센터입니다. 교회 안에는 주기적인 실천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배, 성찬, 세례, 소그룹, 식탁교제 등이 그것이죠. 이런 것을 주기적으로 실천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의 문법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보여주고 살아내는 곳입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갖추어야 할 덕을 훈련하고 하나님 나라의 분위기를 익혀갑니다. 소그룹은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고 활성화시키는 곳입니다. 소그룹 식사는 단순한 교제 이상입니다. 식사를 통해 우리는 환대의 문법을 배우고 연습합니다. 말씀 나눔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성찰 없이 성숙하고 덕을 덧입기는 불가능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를 비춰보는 것입니다. 말씀 나눔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실천해 보기도 합니다. 서로의 실천과 나눔을 통해 우리는 자극을 받고 함께 성장해 가게 됩니다. 단순한 적용점을 찾아 실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성찰의 도구로서 나의 삶의 지향을 조정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함께 구원을 이뤄가는 공동체입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과 식단을 조절하듯, 교회와 소그룹을 통해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연습하며 빚어져 가게 됩니다. 주기적인 교제와 실천을 통해 삶의 문법과 삶의 지향점이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게 조정되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자기수여의 문법이 나에게 체화될 때까지 끊임 없이 연습하고 훈련해 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그룹은 나를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어가는 공방 아닐까요?
물질과 소유가 주는 만족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관계가 주는 만족으로 부유한 교회나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달아
다른 이들의 존재를 꽃피워주는 햇살 같은 교회
분열과 다툼으로 평화(샬롬)가 깨어진 세상 속에서
고통 당하는 이웃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치유하는 평화의 교회비틀거리더라도 정의의 길을 걸으며
모든 위선과 불의에 대항할 줄 아는 강직한 교회
부한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의 소리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부르짖음에 경청하며 동행하는 쉼터교회크고 성장하는 교회보다
작더라도 유기적이고 건강한 교회
타고난 기질과 천성이라 핑계대지 않고
습득된 성품으로서 그리스도의 미덕을 추구하는 덕스러운 교회서로의 차이와 다름에 불편해 하기보다
차이와 다름을 통해 아름다워지는 모자이크 교회
일상과 로컬의 소중함을 알아
지역 사회와 함께 동행하며 공생하는 동네 교회
위로 하나님 사랑, 옆으로 성도 사랑,
바깥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균형 잡힌 교회
인간의 편리와 탐욕으로 신음하는 피조세계와 생태계 속에서
온갖 살아 숨쉬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자원을 아끼는 녹색교회교회 건물 안에 갇히지 않고
향기나는 인격과 성품으로 세상 속에서 열매 맺는 일상 교회멈춤(샤밧)의 소중함과 안식의 가치를 알고
느리더라도 함께 손잡으며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교회
이곳이 마지막 날에나 보게 될 천국인양
하나님 나라를 맛빼기로 보여주는 맛집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