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 중 하나는 초록입니다. 생명들의 색깔이자 광합성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잿빛 겨울의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나오는 푸른 생명력을 보는 것은 이 시즌에만 즐길 수 있는 큰 기쁨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교회 앞 잔디밭을 보니 초록빛 새싹이 수줍게 인사하더군요. 아참, 미네소타에서는 3월 20일이 봄이 시작되는 날인가요? 랄리 목사님께서 3월 20일 아침에 너무나 기쁜 얼굴로 “오늘부터 봄이 시작됐다”고 엄청 좋아하시며 인사해 주시더라구요. 어떤 아이스크림 가게는 봄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공짜로 아이스크림을 나눠주기도 하더군요. 제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3월 20일이 이곳에서는 봄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날인가봐요? 곧 있으면 농부들은 밭을 갈아 엎고 파종 준비를 하겠죠? 황토빛 빈 밭이 초록빛으로 가득 채워질 것을 상상하니 기분이 벌써 좋아집니다. 흙에서 자란 저에게 초록빛은 엄마 품과 같은 느낌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운동 경기장에 들어서서 초록빛 구장을 마주하면 무척 설렙니다. 게임을 보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그냥 초록빛을 감상하는 기쁨이 큽니다. 야구 경기장에 가서 느끼는 초록빛 즐거움이 농구장에 가면 없습니다. 제가 농구에 큰 매력을 못느꼈던 이유도 아마 운동장의 색깔 영향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아침에 빼꼼이 삐져 나온 잔디를 보니 야구 시즌이 오고 있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집 앞에 공터에서 아이들과 캐취볼을 시작했습니다. 제 소싯적 로망이 제 아이들과 캐취볼 하는 것이었기에 캐취볼은 제게 큰 행복감을 줍니다. 올해는 한발짝 더 나가보려 합니다. 첫째와 둘째가 학교에서 야구팀에 들어가게 되면서, 저도 뭔가 학교에 기여를 하고자 아이들 야구팀의 어시스턴트 코치를 맡기로 한 것입니다. 야구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기에 망설여졌지만 코치를 맡는 미국 부모들도 그다지 전문적으로 보이진 않더라구요. 그래도 그동안 갈고 닦은 야구 지식과 실력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 본 것입니다. 투구폼이 엉망인 아이들에게 어깨를 높이 들어올리고 채찍질 하는 느낌으로 공을 던지라 알려주기도 하고, 베팅할 때 코어를 이용해 파워를 만들어내는 법도 알려주기도 하고, 내야 수비의 기본기도 전수해 주는 등 여러 가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었네요. 그러고 보니 어릴적 꿈 중에 하나가 야구 선수였다는 것이 생각나네요.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취미로 즐겨온 야구를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아이들이 “코치 킴”하고 부르는데 이 호칭이 무척 맘에 듭니다^^. 마치 야구 선수라도 된 것 마냥, 꿈을 성취한 것 마냥 기분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커뮤니티에 작게 나마 봉사할 수 있는 보람이 있습니다. 다른 학부모들도 자기 자녀들을 가르쳐 주는 코치라 그런지 더 극진히 저를 대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계기로 이곳 지역 사회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아이들도 아빠가 코치 중 한 명으로 자기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부대끼는 모습이 자랑스럽지는 않을지라도 싫지는 않은 느낌입니다. “코치 킴”이 주는 여운이 한 동안 가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푸릇푸릇한 기쁨과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이길 기도해 봅니다.
지난 주 월요일, 화요일 노회참석 차 시카고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엔 웬지 운전으로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혼자서 5시간 되는 길을 운전할 때 말동무가 없는 것이 제일 아쉽습니다. 그래도 반년 동안 그리웠던 동료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을 만날 생각하니 그렇게 고되지 않더군요. 노회 목사님들을 알아온지도 이제 3년이 되어가니 어느 정도 우정관계가 형성되고 정도 많이 든 것 같습니다. 제작년 가을에 목회자 세미나 기간에 아이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통화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아빠 이것도 사오고, 저것도 사오고…~” 아이들은 자기들 먹고 싶은 것을 쭉 읊어댑니다. 마지막 차례가 된 막내가 “아빠 쵸코 다이제 사와야되~”, “응 알겠어 쵸코 다이제 몇 개 사갈까?” 이 말을 옆에 계신 목사님 한 분이 들으셨나봐요. 목회 세미나가 끝나고 두 달이 지났을 때 목사님으로부터 소포 하나가 왔더라구요. 쵸코 다이제, 맛동산 등 아이들 좋아하는 과자가 상자 한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한인 마트가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저희 아이들이 짠하게 느껴지셨다고 기쁘게 받아달라 하시더군요. 그런데 그 목사님이 이번에도 시카고 도착하자 마자 아이들에게 전해 달라면서 과자 꾸러미들을 저에게 건내 주시는 거예요. 아~ 쵸코 다이제 보다 스윗한 목사님의 마음에 감동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번 노회에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세상 참 좁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쎄 제가 중국 선교사이던 시절, 저와 같은 교회에서 쿠바로 파송을 받은 선교사님을 노회에서 만난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부목사였을 때 선교사님은 이미 쿠바로 파송을 받으셔서 가끔 교회에서 만나 친분이 있는 선교사님이었습니다. 우리 노회가 쿠바 장로교단과 자매결연을 맺어서 쿠바 장로교단 관계자들이 노회에 오시거나, 아니면 저희 노회분들이 정기적으로 쿠바 장로교단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올해는 쿠바 장로교단 총무님께서 우리 노회를 방만하게 되셔서 선교사님이 통역을 위해 노회를 방문하신 것이었습니다. 선교사님께서 만나자 마자 저를 데리고 한인마트에 가자고 하시더군요. 장볼 것 있으면 미리 보라며 저의 등을 떠미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굳이 선교사님이랑 장을 보지 않아도 됐었는데 말입니다. 선교사님은 자신의 살림 경험을 뽐내며 이것 저것 추천해 주시며 장바구니를 채워주시는 겁니다.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아뿔싸 선교사님께서 한사코 장바구니를 계산하시겠다고 나오시는 겁니다. 선교사님의 꿍꿍이 속을 읽지 못하고 선교사님께 신세를 지게 되어버린 겁니다. 선교사님을 섬겨드리지 못할 망정 얻어 먹게 생겼으니 이것 참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받아 누리기만 해도 되나 싶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달콤한 우정으로 가득 채워진 마음은 쵸코 다이제보다 더 달달했기 때문이죠. 이렇게 달콤한 우정을 나눌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몇 달 간은 당떨어질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 성도님들께서 저와 저희 가정에게 보여주신 그 동안의 깊은 우정과 사랑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사랑과 섬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저 또한 예수님이 보여주신 우정의 목회로 여러분에게 보답하길 소망합니다.
사순절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Lent는 엥글로 섹슨어의 Lang과 독일말의 Lenz에서 온 말인데, 봄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Lent라 이름한 것은 길어진다는(Langthen) 의미도 있다고 하네요. 봄은 해가 길어지고 지면이 받는 햇살의 양이 많아지면서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계절이죠. 이 기간 만큼은 우리도 은혜의 빛을 많이 받아서 생명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해 있는 동안의 시간을 더 즐기라고 Daylight Saving Time이 이제 시작되네요. 봄햇살이 만물을 기나긴 겨울 잠에서 깨워 생명의 잔치로 초대하듯, 사순절 기간을 통해 우리 삶에도 생명의 풍성한 잔치가 일어나는 봄이길 기도해 봅니다. 지난 주 눈이 오기 전에 교회 주변길을 걷고 있는데 밤색의 털로 덮힌 애벌래가 길위를 유유히 기어가고 있더라구요. 미물들도 봄의 기운을 느끼고 있나봅니다. 그나 털복숭이 애벌래가 봄인 줄 알고 잘못 나왔다가 눈보라에 살아 남았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최근 설교본문인 나사라의 부활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여러 번 보게 됩니다. 요단강 서편의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1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유대인들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었는데, 그곳에 나사로가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에서 활동하셨지만 예루살렘에 몇 차례 올라가시곤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아마도 가까운 마을인 베다니의 나사로 집에 들러 며칠 신세를 지시곤 했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은 살벌한 곳이었습니다. 유대종교의 거점지였고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달려들던 전쟁터와 같은 곳이었죠.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긴장감과 적대감에서 지치셨을 예수님이 쉬어가시는 오아시스같은 곳이었을 겁니다. 적의 심장부에 위치한 아지트 정도의 의미였을까요? 나사로 가족의 환대는 예수님의 숨통을 열어주는 것이었고 사막 한 가운데의 오아시였을 겁니다. 예수님은 나사로 집에서 차도 마시고, 맛난 음식도 먹고, 따뜻한 대화도 나누며 긴장감을 풀었겠죠. 우리에게도 이런 아지트 하나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는 잔뜩 움츠린 어깨로 주먹을 꽉 쥔채 긴장하며 이민 생활을 이어오고 있으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곳에서 버티기 힘드니까요. 우리에게도 숨쉴 공간이 필요하고 쉼터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마련했습니다. 뭐냐구요? 교회 사무실, 솔직히 저는 사무실이란 표현이 좀 사무적(?)이어서 내키지 않아 잘 사용하지는 않습니다만 이곳에 아지트를 마련해 보았습니다. 소파를 들여놓고 커피를 내리는 도구들을 장만해 놓았습니다. 이제 이곳을 사무실이라 부르지 말고 아지트 또는 쉼터 이런 말로 부르면 어떨까요? 누구든 와서 대화 나누고 차를 내려 마시고, 커피를 얻어 마시고, 꿈을 나누고, 불안을 나누고, 긴장감과 열패감을 나누고, 무엇이든지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일에 언제든 이곳에 오실 수 있습니다. 오전 중에는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 언제든 여러분에게 이 공간과 시간을 열어 놓겠습니다. 커피 한 잔 생각나시면 그냥 오세요, 따뜻한 음료와 이야기가 언제든 마련되어 있으니 지치고 힘들때 와서 좀 쉬세요. 혼자 끙끙대며 버거워 하지 마세요.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그 고단했던 어깨가 좀 풀릴지 누가 압니까?
어린 시절 방에 걸린 달력의 3월 1일에 ‘봄 시작’이라고 써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마음에 3월부터 6월까지는 무조건 봄이어야 한다 생각했었습니다. 미네소타야 뭐 다를 것 있겠습니까? 3월이니 봄인 것이지요! 교회력은 봄과 함께 사순절과 부활절을 맞이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1년 농사가 이 때 시작됩니다. 저는 이 기간을 파종기로 여깁니다. 사순절과 부활절의 파종기를 잘 보내고 나면 한 해의 영적인 결실을 잘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과 부활절 기간의 목표가 있다면 그리스도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합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깨달아 아는 것이고 그마음에 접속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깨닫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순례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순례자는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순례자는 투덜거리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여행자는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Turistas manden, Peregrinos agradecen)”는 라틴어 격언이 있습니다. 순례자는 걷고 또 걸으며 성스러운 장소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일상의 순례도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하는 것을 일상 순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로 인하여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절절히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순례자들은 자기에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성스러운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길은 대개 낮은 곳을 향해 나있습니다. 홀로 서기 어려운 사람들 곁에 다가서고, 그들 편에 서고, 부당한 힘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순례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기도, 금식, 자선을 실천하자 말씀드렸죠. 그 중 자선은 실제적으로 우리의 이웃들에게 전해질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마6:21).” 말씀하셨죠. 우리의 돈이 흘러가는 곳을 보면 그곳에 우리 마음이 있는 것이란 얘기입니다. 가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저희 가정에 귀한 재정을 흘러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우리 가정을 향하고 우리를 위한다는 것을요. 예수님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다 쌓아 두지 말아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보물을 하늘에 쌓는 법은 필요한 자들에게 주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커다란 교회 건물이나 수 많은 회중들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주변에 굶주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주님은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신다고 말씀하셨죠. 그 연약한 사람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듬어 아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존재 이유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쩨다카(Tzedakah)라는 저금통을 선물한다 합니다. 아이는 커가며 그 저금통에 모은 돈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돕는 연습을 합니다. 우리도 각박한 삶이긴 하지만 쩨다카 저금통 하나는 마련하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실제로 부활절에 각 가정의 쩨다카 저금통을 수거하여 가난한 이웃들에게 흘러보내보면 어떨까요?
저는 신대원에 가서야 문리가 트인 사람입니다. 삼십줄에 들어서면서야 공부란 것을 시작했죠.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그제서야 설득이 됐기 때문입니다. 신대원시절부터 공부에 대한 저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머리가 급속도로 벗겨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심취했던 분야는 성서학이었습니다. 성경 본문을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원문으로 읽는다는 것이 너무나 설렜습니다. 원어 성경을 강독하는 수업을 신대원 내내 꾸준히 들으며 성경 번역과 해석에 몰두 했었죠. 그러면서 성경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몸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에 제가 신대원을 졸업했는데, 그때 즈음부터 그동안 한국 교회가 꾸준하게 사용해 왔던 개역성경에서 새로운 한글 번역본인 새번역 성경을 사용하는 교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 한글 성경의 번역의 역사를 살짝 짚어 보며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성경이 번역된 나라로서, 선교사가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들어온 전대미문의 국가였죠. 압록강을 통해 청나라를 오고가며 장사를 하던 상인들과 함께 중국에 머무는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조선말 성경이 최초로 번역되었습니다. 누가복음이 가장 먼저 번역됐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번역 성경은 이북 방언과 어휘들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죠. 그렇게 전해져 오던 성경을 1938년에 새롭게 번역한 번역본이 개역성경입니다. 개역은 말 그대로 고쳐서 번역했다는 겁니다. 아예 새롭게 한 것이 아니기에 이북 방언과 고어체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었죠. 그 개역성경이 1952년과 1961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따라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으로 다시 개정되었지요. 이 성경을 개역한글판이라 부르고 1961년 이후 지금까지 사용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 개혁 한글판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개역개정성경>입니다. 1993년부터 개역성경(1938년 이후 개역개정까지를 통틀어 개역성경이라함)을 좀 더 현대적인 한국어로 번역하자는 의견을 반영해서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이 1993년 출간되었죠. 이 표준새번역본을 다시 조금 더 수정하여 좀 더 현대적인 표현으로 개정한 것이 우리 교회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성경전서 새번역>입니다. 흐름이 더디긴 하나 <성경전서 새번역>으로 개역성경을 대체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거 아세요? 그리스말인 헬라어도 여러 종류가 있답니다. 철학자들이 사용한 헬라어와 시장바닥에서 사용한 헬라어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은 시장바닥에서 사용하는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사람들도 진리에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죠. 성경번역본에도 이 원칙이 적용되야 한다 믿습니다. 가장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성경은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수십년간 익숙했던 개역개정의 어휘와 어감과 달라 어색하긴 하시겠지만 진리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변화는 필요하다 믿습니다. 개역성경과 비교해 가면서 읽는 것도 좋구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좀 더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믿습니다. 새번역본은 대한성서공회라는 권위적인 기관에서 번역을 했고 여러 교단의 신학교의 교수님들과 목사님들이 동참한 한국교회의 권위있는 성경 번역본입니다. 한국 교회내의 변화에 발맞추어 우리 교회도 새번역을 사용해 오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다양한 성경번역본을 읽고 비교하시면서 진리를 더욱 명확하게 이해해 가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돕는 것이 저의 사명이니 언제든 저에게 문의해 주시구요.
미국 내에서 한인교회 사역을 하는 저의 신학대학원 동기들이 제법 있습니다. 개중에 담임목회를 하는 동기들의 모임이 이번 여름에 온라인을 통해 성사됐습니다. 지난 주에 한 번 더 줌을 통해 만남을 가졌습니다. 다들 앞이 보이지 않는 목회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두려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더군요. 한 목사님은 LA의 한인 타운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한인들이 교외 지역으로 이주를 해가고 어르신들의 장례만 치르다보니 자기가 나아가야 할 목회의 방향이 어디인지 감을 잡기가 힘들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더군요. 딱히 뭐라 답해줄 말이 없었지만 마음 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길을 갈 수가 있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헝가리의 철학자 루카치가 <소설 이론> 첫 머리에 쓴 글입니다. 별을 보고 길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 삶을 무한 혹은 영원의 세계와 관련시켜 조망한다는 말이 아닐까요? 세상은 우리로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땅의 현실에만 눈을 돌리도록 만듭니다. 하늘을 잊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죠. 이 시대에 큰 정신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아마도 거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있음 자체로 다른 이들의 좁은 마음을 넓혀 주고, 시야를 확장시켜 주는 그런 사람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내 몸을 완전히 기댈만한 든든한 벽을 가지고 싶다. 참 마음으로 나를 안아 주는 크고 안전한 가슴을 가지고 싶다. 나를 속이는 내 마음의 괴로움을 숨김 없이 말할 수 잇는 사랑을 가지고 싶다.” 시인 김달진의 고백입니다. 이정표를 잃고 갈 길 몰라 답답해 하는 이들에게 이런 사람 한 명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동기들과 만남이 무르익으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서로에게 별이 되어 주라고, 서로에게 든든한 기댈 벽이 되어 주라고 우리를 묶어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민 목회 현실이 아무리 암담하고 갈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함께 기대어 하늘을 바라 본다면 그곳에 뭔가 돌파구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꿈틀 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임에 참석한 동기들이 저 보고 그 모임의 이름 하나 지어보라는 숙제를 주더군요.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다 영감이 생겼습니다. “더불어 숲” 어떤 가요?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혼자서는 버겁고 혼자서는 해쳐 나갈 수 없을 법한 현실이지만 함께 할 때 우리는 숲이 되어, 신선한 상상력을 만들어 내며 상쾌한 희망을 발산할 수 있을 것을 믿기 때문이죠. 동기들이 받아들여 줄 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냥 상상만 해도 좋습니다. 더불어 숲이라니 벌써부터 힘이 불끈 솟아 오르네요. 서로에게 든든할 기댈 벽이 되어주고, 참 마음으로 끌어 안아 주고, 숨김 없이 내 마음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여러분은 있으신가요? 교회가 그런 곳이어야 겠지요? 우리가 더불어 함께 만들어갈 푸른 세상, 따뜻한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 더불어 숲, 우리 교회의 모습이길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먼저 백석(白石)의 시 한 편을 함께 나눕니다. 제목은 고향(故鄕)입니다.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故鄕)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 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 씨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醫員)은 또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이 따스하고 부드러워서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백석, “고향(故鄕)”
백석(白石)의 시는 참 따뜻합니다. 백석은 일제강점기에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났고,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에서 교사를 하다 만주국으로 넘어가 작품 활동을 한 시인입니다. 그의 대표시가 고향이면서 그의 작품의 주요 키워드 또한 고향입니다. 그의 작품에서 그려지는 고향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지만 안식과 평화로움의 정신적 가치를 제공하는 공동체의 유대가 남아 있는 신화적 공간으로 묘사되지요. 아마도 그의 이력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여러 나라와 지역을 옮겨다니며 살아 온 나그네 삶의 고단함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청소년 시기에 유학을 시작하였으니 고향에서의 삶이라야 불과 십 여년 정도였겠지만 고향은 그의 평생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자 이상향이 되었지요. 타향살이에서 가장 서러울 때는 아플 때입니다. 혼자 앓아 눕다 찾아간 의원이 마침 아버지의 친구였다니! 부처같은 상에 관우 장군의 수염을 가진 그 의원은 타향살이에 지친 그에게 고향이 되어줍니다. 누군가에게 고향이 되어주는 삶이란 것이 별 것이겠습니까? 미소가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 부드러운 손길 하나면 충분한 듯 합니다. 이웃 사랑도 별 것이겠습니까? 고향이 그리운 이들에게 고향이 되어주는 것 정도라면 우리도 한 번 해봄 직 하지 않나요?
8월이 저물어 갑니다. 제가 이곳에 온지도 이제 만 2년이 되었습니다. 벌써 2년이네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2년 전 여름, 로드트립으로 켈리포니아에서 미네소타로 이동해 오던 길들이 아직 눈에 선하네요. 아이다호에서 콜로라도의 덴버로 향하는 시골길이었는데 비포장 도로에 안개까지 자욱하게 낀 길을 달리고 있었죠. 마침 “Love never fails”라는 찬양이 차 안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후렴부 클라이막스의 가사가 반복되었고 저와 아내는 그 고조된 분위기에 맞추어 뜨겁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린 돌아서도, 그는 변치 않네,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린 넘어져도, 그 사랑 영원하네.” 우리는 그야말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짐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가라하시니 그분을 따라 가보기로 한 것이었죠. 비장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며 부르짖으며 안개 길을 뚫고 지나온 그 길이 가장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여러분을 만났드랬죠. 2년 동안 저를 한 식구로 여겨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여러분의 가족 같은 사랑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가족 같은’이 아니라 진짜 가족이었죠. 부족한 저를 기다려 주시고 토닥여 주시고 물심 양면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신 여러분들이 계셨기에 참 행복했던 시간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에게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자(莊子) 외편(外篇)의 추수(秋水)에 우물안 개구리 우화가 나옵니다. “우물 안 개구리(井低蛙)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 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장자는 교조(敎條)에 갇혀 사고를 확장하지 못하고 있는 당시의 제자백가들을 우물 안 개구리에 비유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의 생각과 교리나 교조보다 훨씬 크고 넓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자신이 익숙해진 교회 전통이나 교조에 갇혀 그것이 전부인냥 예수님의 넓디 넓은 복음의 이야기를 다 헤아리지 못하고 전달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극을 탐험하는 탐사대에서 네비게이션을 다루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방향을 잘 못 잡아 딴 길로 세버리면 팀원 전체의 목숨이 위태해지기 때문이죠. 목사는 탐사대의 네비게이션을 맡은 자와 같다 생각해 왔습니다. 말 그대로 잘못된 길로 오도(誤導)할 때 그 책임은 엄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우물 안 개구리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오도하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선도(善導)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바울의 말처럼 저는 아직 이룬 것도 아니고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부름의 상을 향해 계속 정진하려 합니다. 드넓은 예수의 바다로 향해 가는 이 여정에 다하나교회 교우들과 하나가 되어 동행하고 있는 것이 저에게는 큰 자랑입니다. 지난 2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부르심의 상을 향해 우리 함께 달려가길 소망합니다!
처음에 여기에 쓰는 글이 목회칼럼이었다가 어느새 목회편지로 바꼈었는데 알고 계셨나요? 칼럼하면 웬지 딱딱한 신문의 투고 글 느낌이지만 편지는 더 다정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라 칼럼이 편지로 바꼈던 것이죠. 제가 여러분과 소통하는 창구로 생각하고 글을 써오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편지를 읽고 있을까 확신은 없지만 그럼에도 제 마음을 여러분에게 나눌 통로가 있음에 감사하며 매주 편지를 드리고 있답니다.어린 시절 학교에서 부모님께 편지를 써야 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누가 가르쳐 줬는지 모르지만 “부모님 전상서(前上書)”를 편지의 맨 첫머리에 쓰고나서 편지를 써내려 갔습니다. 저희 때는 대충 마무리했지만 저보다 앞 세대들에겐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의 끝머리도 정해진 틀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불초소자 막내 아무개 올림”, ‘소자’(小子)란 부모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말입니다. ‘불초’(不肖)란 닮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초(肖)는 닮았다는 뜻이니까요. 초상화(肖像畵)에 쓰이는 한자입니다. 불초란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뜻이니, 부모님 앞에서 한 없이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겸손히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덕성을 닮지 못한 존재이자 아버지에 미치지 못하는 자녀의 고백입니다.
이 불초소자(不肖小子)의 마음이야 말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목표는 하나님 아버지의 형상을 다른 이들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덕성이 우리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나를 통해 타자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불초가 아니라 하나님을 그대로 빼닮은 하나님의 초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단장하기 위해 거울을 봐야 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내가 다른 이들에게 비춰지는 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덕성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 굳어진 우리의 다듬어진 마음의 상태이자 일관된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이미지가 우리의 얼굴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고 흘러가기 때문에 덕성을 기르고 품성을 다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 마음의 거울이 필요합니다. 다른 이에게 비쳐지는 모습을 가다듬기 위해 거울이 필요하듯, 내 마음과 성품을 아름답게 단장해 가기 위해 마음의 거울이 필요합니다. 성찰(省察, reflection)이야 말로 우리 마음을 비쳐보는 훌륭한 거울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나를 비쳐보고,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을 살피는 성찰은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내 삶에 행해진 불초의 태도와 행동들을 성찰을 통해 다듬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성찰은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야 합니다. 매일 거울을 보듯 주기적으로 우리 삶 속의 불초를 다듬어가야 합니다. 불초소자의 마음으로 겸손히 자기를 살피는 우리 모두이길 바랍니다.
가끔 질문을 받습니다. “목장이 뭐예요?”, “목장모임은 왜 하는 거예요?” 우리는 왜 목장 모임을 하는 것일까요?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이야 말로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목장 모임의 목적이 무엇이고 왜 모이는 지 알고 모이는 것이 정말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제임스 스미스라는 신학자는 교회를 “심장이식재활센터”라는 은유로 설명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던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심장으로 이식되어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심장을 이식 받은 환자는 수술로 치료가 끝나지 않습니다. 재활 치료가 이어집니다. 정기적으로 의사를 만나서 상태를 점검 받고 주기적인 운동과 식단 조절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니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부터가 중요합니다. 더욱 건강하고 바른 삶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건강한 삶이란 건강한 인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름아닌 예수의 인격과 성품을 덧입기 위해 노력하는 삶입니다. 구원 이후의 삶은 바로 그리스도의 성품, 다른 말로 덕이 내 성품과 인격 안에 자라가도록 노력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덕을 함양하는 삶 또는 성화의 과정은 많은 노력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과 실천은 혼자서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만드셨죠. 교회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재활센터입니다. 교회 안에는 주기적인 실천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배, 성찬, 세례, 소그룹, 식탁교제 등이 그것이죠. 이런 것을 주기적으로 실천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의 문법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보여주고 살아내는 곳입니다. 교회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갖추어야 할 덕을 훈련하고 하나님 나라의 분위기를 익혀갑니다. 소그룹은 그것을 더욱 심화시키고 활성화시키는 곳입니다. 소그룹 식사는 단순한 교제 이상입니다. 식사를 통해 우리는 환대의 문법을 배우고 연습합니다. 말씀 나눔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성찰 없이 성숙하고 덕을 덧입기는 불가능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를 비춰보는 것입니다. 말씀 나눔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실천해 보기도 합니다. 서로의 실천과 나눔을 통해 우리는 자극을 받고 함께 성장해 가게 됩니다. 단순한 적용점을 찾아 실천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성찰의 도구로서 나의 삶의 지향을 조정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함께 구원을 이뤄가는 공동체입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과 식단을 조절하듯, 교회와 소그룹을 통해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연습하며 빚어져 가게 됩니다. 주기적인 교제와 실천을 통해 삶의 문법과 삶의 지향점이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게 조정되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자기수여의 문법이 나에게 체화될 때까지 끊임 없이 연습하고 훈련해 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그룹은 나를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어가는 공방 아닐까요?
지난 한 주 날씨가 변화무쌍했지요? 주초에 봄비가 연두빛깔 아우성으로 잠자는 생명을 깨우듯 힘 있게 내렸습니다. 농사꾼의 자녀들이 비를 반기는 이유가 비가 오면 그날은 농사일을 쉬기 때문이라는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비가 오면 설렙니다. 이슬비로는 일을 쉬지 않으니 주럭주럭 힘 있게 내리는 비여야만 반갑습니다. 주말로 가면서 점점 날씨도 추워지고 바람이 거세집니다. 안락하고 따뜻함에 익숙한 비루한 몸이라 그런지 바람을 맞으며 우뚝 서서 걸을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바람부는 날엔 좋아하는 산책도 멈추고 아직은 앙상한 흔들리는 가지들만 창밖으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다채로운 봄날씨 앞에서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네 인생이야 말로 명과 암이 공존하고, 바람은 언제 불어 닥칠지 알 수 없고, 궂은 날과 맑은 날이 대중 없이 교차합니다. 인생이 일기예보 정도만큼이라도 한 치 앞을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고요한 일상에 갑자기 불어 닥치는 풍파에 정신을 못차리고 나가 떨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변화는 우리를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통로가 되어주는 것은 아닐까요?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 가려고 만물이 요동하며 몸부림 치듯, 우리 삶에 불어 오는 변화와 풍파들은 우리 삶에 시작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일기예보는 아닐까요. 어떤 이는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야 합니다. 이곳의 삶의 특성상 떠나는 이들이 낯설지 않고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새가 부화하려면 알을 깨고 나와야 하듯이 익숙한 것을 깨고 새로운 환경 가운데로 옮겨 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더 큰 세계를 향한 도약이 될 수 있습니다. 나그네 삶을 즐기는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민자로서 나그네 삶에 경제적인 어려움 보다도 더 큰 것은 정서적 긴장감일 것입니다. 지속적인 긴장 속에 머물 때 마음속 여백은 줄어들고 삶은 여유를 잃게 됩니다. 여백과 여유를 잃은 삶은 날카로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말은 퉁명스러워지고 표정 또한 어둡고 싸늘해 지기 쉽습니다. 원망이 커지고 분노심을 주체할 수 없어지기까지 합니다. 그럴 수록 더 큰 세계를 향해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몸의 자세를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고들 합니다. 여행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굳이 돈들고 집떠나 고생하는 것이지만 자세를 바꾸고 시선을 바꾸기 위해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산책은 여행을 대체할 다음 처방전입니다. 농사 짓던 시절 포대에 곡식을 담을 때 곡식의 빈틈을 매꿔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려고 포대를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추겨 세우곤 하죠. 산책이 마치 그 동작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걷기를 반복하다 보면 긴장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 해소됨을 느낍니다. 계절의 변화와 인생의 변화 앞에서 초라해지는 우리지만, 그 변화 속에서 우리네 삶에 일어날 긍정적인 가능성들을 상상해 봅니다. 다채롭고 버라이티한 우리네 삶이지만 그 안에서 여백을 찾고 여유를 찾아 따뜻하고 부드럽게 타자들을 보듬어 주는 삶이길 바라봅니다.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격 유형에서 N(직관)이 발달한 저로서는 공식을 이해하고 대입하고 적용하는 수학이라는 과목이 다른 나라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공식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듯합니다. 최근에 어떤 목사님께서 H=C/D 라는 공식을 말씀하시더군요. ‘이게 뭐지? 아 또 공식인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H-Happiness, C-Capital, D-Desire 라는 힌트를 드리면 좀 감이 오시나요? 행복은 욕망 분의 자산이라는 공식입니다. 자산(C) 안에는 돈, 재산, 소유 등의 유형의 자산도 있지만 인맥과 같은 무형의 자산도 포함된다고 합니다. 예전에 비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편리해 졌고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사회관계망(SNS)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시스템 덕에 더욱 편리해지고 접근이 쉬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행복하지 않다고 하소연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행복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분모인 욕망(Desire)이 자산의 증가 보다 훨씬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소유와 소비가 증가한 만큼 우리들의 욕망은 배가 되었습니다. 아니 소유와 소비를 따르는 세상 풍조에 휩쓸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더 큰 욕망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예전에 못 살던 시절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고 관계의 결핍을 호소할 뿐만 아니라 외로움과 우울에 시달립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행복의 비결은 욕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욕망의 값을 조절하려는 것보다 아예 욕망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것이죠. 모두가 경쟁을 통해 자산을 확보할 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여 행복을 찾고자 하는 욕망을 따르지 않고 아예 다른 욕망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경쟁과 배제, 혐오를 통해 다른 이를 도태시켜 누리는 행복이 아니라, 포용하고 상생하고 연대하며 환대를 통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우리 주님은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내 자신의 필요와 내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Ego를 향했던 욕망의 방향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인 타자를 향해 수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이 욕망을 재조정하는 과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영생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천국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마음의 다짐과 함께 시작됩니다. 천국의 삶이란 타자를 위해 나를 선물로 주는 자기 수여의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를 주로 믿고 그가 몸소 보이신 삶을 따라가겠다고 결단한 이후부터 우리의 욕망은 조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욕망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욕망하는 방향의 전환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교회 생활과 소그룹은 바로 이 욕망 재조정의 훈련소라 할 수 있습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다른 이와 함께 함으로 더 행복하다는 것을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환대와 연대, 포용과 공감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음을 함께 배워가는 것입니다. 행복의 비결은 욕망의 방향을 조정하는 길이 아마 제일 빠를 걸요?
그날 삭풍에 느즈막이 피어난 매화꽃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셋째 아들의 출산을 단 며칠 남겨두고 제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매화꽃 마냥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2016년 2월 말에 귀 밑 이하선이라는 침샘에 나있는 종양을 떼내는 수술을 했습니다. 안면 신경을 감싸고 있던 종양을 떼내는 수술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주치의 선생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떼어낸 종양의 조직이 악성으로 판명났습니다. 부랴부랴 악성 세포들이 몸에 퍼졌는지 검사를 해야했고 그 검사를 기다리는 1주일의 기다리는 시간에 집주변을 산책하며 흔들리는 매화와 마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별다른 이상이 없어서 수술과 함께 치료를 종료한다는 소식과 함께 기쁨과 환희의 부활절을 맞이했었죠. 그때만큼 감격적인 부활절도 없었습니다. 3월 27일 부활주일 예배를 드리고 난 후 나흘만에 막내 녀석이 태어났으니 이 녀석은 그야말로 부활둥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막내의 출산이 없었더라면 한국에 나와 검사와 치료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고 중국에서 계속 병을 키우고 있었을테니 녀석이야 말로 저를 부활시켜준 부활둥이였습니다. 흔들리는 매화 앞에서 저를 찾아와 주셨던 주님을 기억합니다. 그렇게 부활의 주님은 흔들리는 우리네 삶에 다가와 주시곤 합니다.
흔들리던 제자들에게 다가 오셨던 부활의 예수님은 참 따뜻했습니다. 주님은 부활 후 제자들을 찾을 때마다 먹을 것을 준비하시곤 하셨죠. 주님은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묻곤하셧죠. 요즘 말로 치면 “밥은 먹고 다니니?”일 것입니다. 그렇게 호언장담하며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던 수제자 베드로는 주님을 볼 면목이 없었을텐데, 그에게 주님은 “얼굴이 그게 뭐니?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녀야지. 이리와~ 생선 궈놨으니 한 술 들자!” 하셨죠. 또 한 번은 부활의 주님이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를 찾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달려서 세 시간 동안 몸부림 치던 것을 직접 보았죠.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냐고 하나님 아버지께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어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가던 예수를 보며 그들은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죽음이 최후의 판결자라고 확신하고 낙향하기로 한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에 온통 사로잡혀 있던 그들을 주님은 친히 찾아가시어 그들과 저녁 식탁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보여주신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바로 ‘환대’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주님은 흔들리는 자기 백성들을 기꺼이 찾아가십니다. 이직, 결혼, 출산, 건강, 경제적인 고통 때문에 흔들리는 사람들을 그냥 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에게 찾아가시어 기어코 다시 일어날 힘을 주십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들은 모두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이 판 치는 세상 한 가운데로 보내진 자들이지만, 죽음에 맞서 싸우는 동아리인 교회의 일원입니다. 때론 흔들릴 지언정 아주 엎드러지지 않음은 부활의 주님과 형제 자매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환대해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교회는 어떤 의미인가요? 교회가 여러분 각자의 삶에 주는 의미는 모두가 다 다르리라 생각됩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교회는 놀이터였습니다. 집과 바로 이웃한 교회는 널직한 마당이 있었고 또한 그곳에는 넉넉하고 너른 마음의 목사님과 사모님이 계셨죠. 그분들은 항상 저를 환영해 주셨습니다. 집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간식들을 대접해 주시기도 했죠. 예배당 안의 의자들 밑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고 교회의 큰 기둥을 이용해 나이먹기라는 놀이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목사님께서 예배당의 난로에 불을 지펴주시면 옹기 종기 모여 앉아 그 따스함을 즐기곤 했죠. 겨울 난로만큼 교회는 따뜻한 곳이었습니다. 청년이 되어 교회 어른들과 함께 중국 감숙성의 산골 오지 소수민족을 돕는 의료선교에 동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선교를 마치며 감숙성 란저우라는 도시의 한 호텔에서 모두 함께 가족의 시간이라는 공동체의 나눔을 가졌습니다. 벅찬 선교의 현장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과 이곳에 계속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필요성에 선교사를 한 명 파송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즐거운 분위기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제가 이듬해에 교회의 파송을 받아 평신도 선교사로 그땅을 다시 밟게 되었죠. 그들은 검증되지 않은 한 명의 대학생을 신뢰하여 보내는 대담함을 보였습니다. 교회가 한 명의 선교사를 잉태하고 그를 낳아 선교지에 보내본 경험은 의료선교에 동참했던 모두가 느끼는 감격이었습니다. 제 지난 삶을 돌아보니 교회는 그야 말로 저에게 어머니의 품이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태어났고 교회가 저를 길렀으며 저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 카르타고 출신의 순교자였던 키프리아누스는 여성의 출산과 양육 이미지를 통해 교회를 어머니로 소개했습니다. 그의 글을 간단히 인용해 봅니다. “교회의 자궁으로부터 우리는 태어났고, 교회의 젖을 먹고 양육되며, 교회의 숨결을 호흡하며 소생한다.…만일 당신이 교회를 당신의 어머니로 가지지 못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가질 수 없다.” 어머니만큼 이타적인 존재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어머니는 사람이 자기를 타자에게 선물로 줌을 통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상입니다. 건강한 교회에 몸담은 사람들은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 자란 아이들과도 같습니다.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존재로 자라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은 불신자라도 건강한 교회에 매주일 참석하다보면 그는 교회의 품속에서 거듭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그 널직한 교회의 품에서 놀다 어느새 목사까지 된 사람입니다. 그 품이 너무 따뜻했습니다. 교회를 통해 만난 선교의 동역자들은 평생지기로 지내는 제 2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제가 평생 교회에 몸담고 성도들을 섬기는 이유는 어머니된 교회의 품을 더 많은 이들에게 맛보게 해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아버지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과 소유가 주는 만족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관계가 주는 만족으로 부유한 교회나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달아
다른 이들의 존재를 꽃피워주는 햇살 같은 교회
분열과 다툼으로 평화(샬롬)가 깨어진 세상 속에서
고통 당하는 이웃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치유하는 평화의 교회비틀거리더라도 정의의 길을 걸으며
모든 위선과 불의에 대항할 줄 아는 강직한 교회
부한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의 소리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부르짖음에 경청하며 동행하는 쉼터교회크고 성장하는 교회보다
작더라도 유기적이고 건강한 교회
타고난 기질과 천성이라 핑계대지 않고
습득된 성품으로서 그리스도의 미덕을 추구하는 덕스러운 교회서로의 차이와 다름에 불편해 하기보다
차이와 다름을 통해 아름다워지는 모자이크 교회
일상과 로컬의 소중함을 알아
지역 사회와 함께 동행하며 공생하는 동네 교회
위로 하나님 사랑, 옆으로 성도 사랑,
바깥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균형 잡힌 교회
인간의 편리와 탐욕으로 신음하는 피조세계와 생태계 속에서
온갖 살아 숨쉬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자원을 아끼는 녹색교회교회 건물 안에 갇히지 않고
향기나는 인격과 성품으로 세상 속에서 열매 맺는 일상 교회멈춤(샤밧)의 소중함과 안식의 가치를 알고
느리더라도 함께 손잡으며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교회
이곳이 마지막 날에나 보게 될 천국인양
하나님 나라를 맛빼기로 보여주는 맛집 교회